쇠갈고리 손의 기억
어린 시절, 우리 동네에 찾아오는 한쪽 손목이 없으신 분이 꽤 계셨다. 그분들은 손 대신 쇠갈고리를 부착한 채 마을을 돌며 밥을 얻으러 다니셨다. 지금 생각하면 그저 생계를 위해 어쩔 수 없이 택한 삶의 방식이었을 텐데, 그때의 우리는 어린 마음으로 그 모습을 무섭게만 느꼈다.

마당에서 딱지치기나 숨박꼭질, 색깔 찾기를 하며 놀다가도 누군가 “집으로 뛰어!” 하고 외치면, 그 말이 신호가 되어 모두가 우르르 집 안으로 달려들었다. 대문을 닫고 빗장을 걸고, 방 안에서는 둥근 고리를 문고리에 걸었다. 급히 화장실을 가야 하는 동생은 참다 참다 위급시 개구멍으로 기어나갔다가 재빨리 일을 보고 얼굴이 상기되어 다시 그 길로 기어 들어왔다.

모두가 무사히 안으로 들어오면, 우리는 넓적한 나무판으로 개구멍을 막고 그 뒤에 무거운 물건을 바짝 대었다. 그리고 문창호지에 침을 살짝 발라 구멍을 내고, 밖의 상황을 엿보며 교대로 망을 보았다.

그 작은 구멍 속으로 보이던 바깥세상은 언제나 긴장으로 가득 차 있었다.
지금 돌이켜보면, 그것은 두려움의 기억이면서도 동시에 가족의 따뜻한 온기가 함께한 시간이었다. 서로를 지켜주려는 마음, 작은 두려움 속에서도 함께 웃고 의지하던 어린 날의 우리.
세월이 흘러 그 시절의 남매들은 이제 모두 어른이 되었다. 각자의 자리에서 열심히 일하며, 부모가 물려준 성실함을 삶의 근간으로 삼고 살아간다. 농사일을 마치시고 집으로 오신 부모님, “걱정하지 마라.” 늘 다정한 목소리로 우리를 안심시켜 주시던 아버지는 이제 천국으로 가셨다. 그리고 무언가 급했던지 먼저 우리 곁을 떠난 막내 동생이 오늘따라 유난히 그립다.
그때의 쇠갈고리 손, 두려움에 떨던 우리, 그리고 서로를 품어주던 가족의 모습이 문득 떠오른다. 그 모든 것이 이제는 세월의 먼지 속에서 빛나는 추억이 되었다. 두렵고 낯설었던 그 시절의 기억은, 결국 내 마음속 가장 따뜻한 이야기로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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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합니다.
치매 잡는 이상순
인지교육원 올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