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매잡는 이상순

간이 배 밖에 나온 수지를 돌보고 본문

살아가는 이야기/자원봉사코너

간이 배 밖에 나온 수지를 돌보고

희망나눔 강릉 이상순 2009. 3. 13. 15:24
300x250

2006년 3월 어느 날 강릉 천사운동본부 사무실로 전화가 왔다.

 

아이 목욕을 시켜달라고..

대관령 가까운 내곡동에서 자전거의 페달을 힘차게 밟고 안목바다 근처로 향했다.

강릉에서는 끝과 끝의 거리다.  자가용으로는 그렇게 먼거리는 아니지만 자전거로 이동하기는 좀 멀다.

자전거를 끌며, 어딘지 몰라서 여기 저기 기웃거리며, 골목길을 들어가 겨우 찾아 들어갔다. 아이는 땀에 절어있었다.

아이 엄마에게 목욕대야와 더운물을 요청했다.

 

한참 후에 물을 담은 대야가 들어오고 아이 옷을 벗기는데, 갑자기 내 심장이 멎을 것 같은 두려움에 깜짝 놀랐다.

보통 사람의 형상이 아니라서 더욱 놀랄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목욕을 시켜주겠다고 대답을 했고, 방안에 목욕물까지 들여왔는데,

여기서 어떤 일이 있더라도 난 목욕을 시켜야 할 입장 이였다.

 

아이의 배에는 갈비뼈 속에 들어 가 있어야 할 간이 배 밖으로 나와 있었던 것 이었다.

(그래서 목욕을 시켜 달라고 전화를 하셨구나 솔직히 간을 만지면서 씻겨줄 자신은 없었지만 어떻게 하겠는가?)

아이의 옷을 모두 벗기고 대야 속으로 넣고 머리 부분부터 씻기기 시작했다.

배 쪽에 시꺼먼 간이 얇은 보자기 같은 살로 살짝 쌓여서, 호흡 할 때마다, 벌렁 벌렁 움직이며, 밖에 붙어 매달려 있는데, 미끌미끌하니 씻다가 섬뜩한 기분이 들기를 수차례 , 엄마 혼자서 씻기다가 간 다칠까봐 못 시킨 모양 이었다. 아이는 목욕대야 속에서도 칭얼대지도 않고,  잠자더니  옷을 입히며 보니 완전 곤하게 새근새근  잠이 들어버렸다.

그 동안 어린 아이가 말도 못하고 몸이 얼마나 괴로웠을까?

간 때문에 벌떡 일어서지도 못하고 잠시 앉을 때는 무슨 발레리나처럼

다리를 양쪽으로 쫙 펼쳤다가 모으면 앉아 있는 자세로 되었다.

천사 같이 어여쁜 아기가 이런 고통을 받아야 한다니 마음이 아팠다.

 

목욕을 마치고 집으로 오는데 대관령 찬바람이 자전거를 향해 어찌나 불어대던지 페달이 돌아가지 않아서 애를 쓰면서 집에 도착하니

골반 뼈가 욱신거렸다, 그러나 깔끔하게 씻고 천사의 모습으로 곤히 잠든 수지 모습을 생각하니 행복함과 보람을 느끼게 되었다.

 

이렇게 처음으로 수지를 알게 되었다.

 

어느 날 수지랑 강릉천사운동본부가 MBC 화제집중에 방송을 나가면서, 독지가의 후원이 이어져서 수지를 도울 수 있어서 더욱 뿌듯했다.

그러던 중 1년이 훨씬 넘은 어느 날 수지 어머님으로부터 전화가 왔다.

“수지가 폐렴이 너무 심한데 강릉에 있는 병원에서는 수지 입원 거부하며 서울로 가래요”

“그러면 수지 어머니 집에 아이들 셋은 누가 돌본답니까?” “ 애들끼리 있어야지 어쩔 수 없군요. ” “그럼 서울 가셔서 제가 필요하면 연락 하세요”

 

강북삼성병원에 입원을 했다고 연락이 온 후 10일 후 다시 전화가 왔다.

 

“저 부탁이 있습니다, 병원에 입원한 수지도 중요하지만,

강릉에 두고 온 저희 아이 셋 모두 심한 독감에 걸려서 울고 있다고 연락이 왔습니다. 서울로 오셔서 수지를 좀 봐 주십사 전화 했습니다. “아 네 잠시만 기다려보셔요 저희 아이들한테 알아보고 전화 드릴게요” 아이들에게 전화를 해 엄마가 서울로 수지 간병하러 가면 밥 해 먹고 학교 갈 수 있냐고 하니 “엄마 반찬거리만 사 놓고 가시면

걱정 없어 요” 하여 수지 간병을 하게 되었다.

 

서울병원에 갔을 때 는 수지는 가래가 끌어 고통스러워서인지 계속 칭얼거렸다. 간이 배 밖에 있으니 들쳐 업을 수도 없고 한손으로 가슴 부근을 끌어안고 또 한 손으로는 링겔 병을 들고 병원 복도를 왔다 갔다 반복.... 배고파 우는가 싶어서

음료를 먹이면 곧 바로 토하고, 잠이 드는가 싶으면 5분도 안되어 깨고 많이 괴로운 표정을 지으며 축 늘어지는데, 이러다가 수지가 잘못되면

어쩌지 싶은 게 불안감이 밀려왔다.

 

새벽 4시경 강북 삼성병원 안이 고요한 적막이 흐르는 동시에 수지가 살짝 잠이 드는 순간 또 한 번 아이를 눈여겨보게 되었다.

무슨 일이 생길까봐 몹시 불안해졌었다.

 

갑자기 나의 딸이 생각났다.

먹고 살기 너무 힘들 때 새벽4시부터 밤 11시까지 온 종일 서서 힘들게 일을 해서인지 선천성 심장병을 안고 태어났다가 그 당시 천만 원 이 넘는 수술비가 없어서 5개월 만에 채 피지도 못한 꽃 한 송이를 화장터로 보내야 만 했던 딸 아이, 이젠 내 가슴에 묻히었다. 크게 한번 소리쳐 울지도 못하고, 늘 살포시 미소 짓던 딸아이가 무척이나 그리운 밤 이였다.

 

내 딸아이를 만난 마음으로 수지를 더욱 잘 보살피게 되었다.

 

간호사한테 병 링겔을 비닐로 된 링겔로 교체 부탁하고 머리에 올리고는 수지의 가래가 폐에서 떨어지게 등을 두들기기 시작했다.

엄마가 보고 싶어 우는지, 폐에 쌓인 가래 때문에 괴로워서 우는지 자세히는 모르지만, 등을 계속 두들겼다.

2박 3일을 잠 한숨 못자고 수지 등만 두들겼다. 정말 너무 졸렸다.

병원 복도 벽에 머리를 부대끼며 몇 번이고 휘청 거렸으니...

수지 엄마가 올라온다는 전화를 받고 교대를 했다.

내가 강릉으로 내려 온 다음 날 전화가 왔다 “ 어떻게 등을 잘 두들겨 주셨는지 수지 폐에 가래가 다 떨어져 나갔다고 퇴원하래요, 의사선생님이 엄마보다 훨씬 등 잘 두들겨서 가래가 빠졌데요” “ 그래요 아이 기분 좋아요 ” 그리고 얼마 후에 수지가 간 수술을 하러 간다는 소식이 들렸다. 난 수지 엄마한테 표현은 못 했어도 그 커다란 간이 작은 뱃속에 들어가 수지가 호흡을 못하면 어쩌지 속으로 엄청 걱정을 했었다.

수지 그 여린 아기가 수술을 잘 이기고 없던 배꼽을 만들어 달고, 퇴원 하는 날 나를 제일 먼저 찾아 왔노라고,

봉사자로 그냥 만난 인연인데 그리 끔찍하게 생각해 주니 온 세상이 환해지는 기분이었다. 얼마 전 주문진에 도배봉사를 다녀오다가 뒤풀이로

강릉 안목바닷가 백사장에 가서 놀다가

온 김에 수지를 보려고 전화를 했다, 금방 나온다고 꼭 있으라고.... 수지는 길에 내 놓으면 누군가 훔쳐 가고 싶을 정도로 어여쁜 아이로 자라있었다. 수지가 예쁘게 자라서 놀랐고

또 한 번 놀란 것은 수지엄마의 고백 이였다.

“본부장님! 사실 고백할 것이 있는 데요”

“뭔데요?”

“그때 수지 폐렴 걸렸을 때, 수지가 눈에 초점도 없고, 애가 축 늘어지고

밥을 며칠째 못 먹고, 아무래도 못 살 것 같아 내 눈앞에서 떠나는걸 보느니 안 보는 게 좋겠다 싶어 본부장님께 부탁을 드렸는데, 3일째 병원에 와 보니 수지가 눈알이 말똥말똥 초롱초롱 빛이 나고 잘 놀고, 잘 먹고 본부장님이 우리 수지를 살렸다니요, 너무 고맙습니다, 수지야 너도 인사드려야지”

자원봉사자의 신분으로 인연이 되어 만난 수지와 나

보통 인연은 아닌 것 같다.봉사를 하면서 이렇게 기분 좋은 말을 듣다니

세상을 다 얻은 기분이다. 너무나 예쁘게 자란 수지, 2009년 2월에 심장병 수술을 받아야 하고 척추교정 수술도 받아야 하는데 그 가녀린 수지가 부디 잘 견디어 예쁘게 잘 자라 한국 사회에 꼭 필요한 인재가 되길 바라는 마음입니다.

2008년 10월23일 밤 11시11분 강릉천사운동본부 이 상 순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