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매잡는 이상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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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슴 아픈 이야기

희망나눔 강릉 이상순 2009. 10. 9. 2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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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릉천사운동본부를 시작하면서 알게 된 가정이 있다.

어르신은 예전에  어느 고등학교 교장선생님이셨다고 들었다.

정년 퇴직을 하시고 강릉으로 이사를 오셔서 학원을 하셨는데

그 당시 학원이 잘 되지 않았을때라 재산의 대부분을 잃게 되셨다고 들었다.

 

그 충격으로 시력이 약해지면서 서서히  시력을 완전히 잃으시게 되었고

다리는 안 좋으셨지만 그래도 옆에서 부축을 해 드리면 그런데로 걸을 수 있으셨다.

어르신과 강릉시내를 걸을 때 수 많은 시민들이 쳐다보는 시선이 실은 부담스러웠다.

어르신은 비장애인처럼 눈은 시력이 있는 사람처럼 완전하게 떠져 있으니

바라보는 사람들은 멀쩡한 어르신을 왜 저렇게  팔을 바짝 끌어안고 걷나 싶었을것이다.

 

나는 어르신께 계속 주문을 외우며 걸어야 했었다.

내가 말씀을 드리면 그 어르신은 " 여기 어디쯤이요?"

나는 우체국 앞이예요 라고 말씀드리면

" 그럼 건너편에 농협이 있죠?

좌측에는 한국은행이 있고요"

 

예전에 앞을 보았을때가 있었기에 기억하는겝니다. 라고 하시며

강릉시내 볼일을 보시며 시력이 있었을 때를 회상하시던 어르신이

한 밤중에 전화하셔서는 병원가는데 동행 해 달라고 부탁을 하셔서

강릉119구급차를 타고 입원시켜 드리러 갔었고,

며칠 입원하셨다가 퇴원 하실때는" 나 퇴원시키러 와주면 고맙겠소" 해서 퇴원 시키러 가고

 

중간 중간 입원과 퇴원을 반복하시더니 언젠가부터

입원을 안 하시고 집에서 지내셨다.

병이 깊어져 차도도 없고 병원비도 없고 등등의 애로사항이 겹쳤던 것이다.

 

나는 출근할때 퇴근 할때, 때로는 낮시간대에 들려서 어르신의 말동무를 해 드렸다.

눈이 안 보이시니까 꼭 손을 덥석 잡으시고 말씀을 하시던 어르신이셨다.

혼자 침대에 누우셔서 라디오에 티비에 방송만 들으며 나날을 보내셨으니 사람을 만나면 너무나 반가워하셨다.

 

어느 날 어르신이 중국집을 가자고 하셨다.

자장면과 탕수육을 시키시고는 드실때는 제일 가까운 곳에 있는 음식만 드셨다.

내가 입에 넣어드리면 혼자 드실 수 있다고 사양하시던 어르신이 "경배 엄마 많이 드세요"

이제 생각하니 어르신은 나를 위해 중국집을 가신것 같다.

 

할아버지께서 나와 알게 된지 2년이 됐을까?

할아버지는 다리까지 움직일 수가 없으셔서 집에 누워서 지내셨다.

할머니께서 할아버지의 눈과 다리가 되어 주셔야 했다.

 

제일 힘든것은 화장실 가실 때 휠췌어에 앉혀 드리는 일이라 하셨다.

허리가 아프시고, 몸 전체가 휘청거리며 할아버지 쪽으로 넘어지기도 여러번이라 하셨다.

하긴 80이 다 되는 할머님이 무슨 힘이 있으셨을까?

덩치있는 내가 어르신을 부축하기도 버거웠으니....

 

제가 필요 하실때는 아무때나 전화하시라고 말씀 드렸었다.

전화가 오기도 했는데, 병원가자는 일, 약 사오라는 일, 슈퍼에서 베지밀 사 오라는 일, 우체국 사서함 통에가서 편지 찾아 오라는 일...등등..

 

어르신 댁에 수시로 드나 들었는데 2009년 6월에 다리 골절로 입원을 하면서 어르신댁에 못 갔다.

한달만에 퇴원을 해서 어르신댁에 갈려니 다리가 힘이 없어 갈 수가 없었다.

전화로 인사나 드릴까 하고 전화를 하니 받지를 않으셨다.

예전에는 전화벨이 울리는 순간 전화를 즉시 받으셨는데....

며칠 간 계속 전화를 드렸지만 벨소리만 울리는것이었다.

이상한 예감이 들었다.

 

3주전에 어르신 댁을 찾아가서 현관 벨을 울렸는데 소식이 없었다.

예전에는 벨을 울리면 방안에서 "경배엄마유" 라며 반갑게 대답하시던 어르신이.

별의 별 생각이 다 들었다.

설마 설마를 반복하며.....

오늘도 전화를 몇번 했는데 소식이 없어서  이웃집에 수소문을 하러 갔다.

 

"할머님은 치매가 와서 한달전 아침 6시에 우리집 신발장 위에 실로 똘똘 뭉친 만원짜리를 올려놓고 가셔서

할아버지 머리를 방망이로 수도 없이 때리셨어요. 할아버지는 앞도 안 보이시지, 다리도 못 움직이시지 꼼짝없이 맞을 수 밖에 없으신거죠.

아침6시니 이웃 사람들도 잠자는 시간이고 늦게야 어르신의 비명소리에 잠을 깨고 알았을때는 이미 피바다가 된 다음이었어요.

119구급차 오고 난리였어요 치매가 그런 질환일 줄이야

 할아버지 머리 많이 꿰매셨데요 춘천병원으로 가셨는데 이제 강릉에는 안 오신데요"

 

나는 이상해서 " 남의 집 신발장 위에다 왜 돈을 올려 놓았을까요?"

이웃집 말씀이 "그러니 치매지요"

 

" 맞아요 할머님께서  경배엄마 내가 치매가 왔지 뭐유 나갔다가 집을 못 찾을때도 있어요"

 라고 저 한테 말씀하신 기억이 나요.

저야  설마했지요 그래도 치매가 그리 급격히 진행이 되었을 줄이야 .

 

순간 눈물이 핑 돌았다.

내일은 춘천 어느 병원인지 수소문을 해서 두 어르신을 찾아 뵈야겠다

 

.

.

어르신의 딸과 전화 통화가 되었다.

할머니는 용인에 치매시설로 가셨고, 할아버지는 춘천 모 병원에 입원 하셨단다.

마음 아픈것은 할아버지도  치매가 살짝 왔다고...

그래서 치료를 해야한다고...가까운 강릉에 입원해 계시면 내가 수시로 드나들 수 있는데 마음이 쨘하다.

전화통화라도 하고 싶다 했더니 아직은 안정을 취해야 해서 다음 기회에 통화 시켜 주시겠다 했다.

 

면회만 시켜 준다면야 언제 춘천병원에 찾아가고 싶다.

어르신이 내 목소리만 들어도 기운이 펄펄 나신다 하셨는데....

두 어르신이 너무나 뵙고 싶다.

 

가까운 강릉에 계시면 자주 방문하여 힘을 실어 드리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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