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썬파워 아줌마’ 이상순씨(42). 강릉시 내곡동 7통3반 반장, 강릉 의용소방대원, 국민생활체육 강원도 축구연합회 심판, 상록축구회 골키퍼, 강릉천사운동본부 간사, 강릉시 대표 씨름선수…. 아줌마의 ‘끼’가 사랑과 위로가 필요한 곳에 다양한 모습으로 분산돼 있다.
#75㎏의 주체할 수 없는 사랑
본업인 주부 일은 귀가후 새벽 1~2시가 돼야 시작된다. 바깥 일이 더 바쁘다. 불이 나면 화재 현장에 달려가 소방 대원을 보조하며 잔불 끄고 장마철엔 수재민 돕기에 나선다.
장애인이 힘겹게 희망을 피우고 있는 곳이라면 어디든 찾아간다. 강릉 사천에 있는 ‘사랑의 일터’는 장애인들이 모여 화장지, 감로차 등을 만드는 곳. 남편 박상국씨(45·사진 위 왼쪽)와 딸 신영(17), 아들 경배(13)도 자주 따라 간다. 가족이 휴지 끼우기, 황태 포장하기 등과 허드렛일을 찾아 한다.
축구도 열심이다. 새벽 5시엔 축구회에 나가 공 차고 심판도 본다. 5월 단오제 씨름대회에 대비해 슬슬 몸 만들기도 해야 한다. 요즘 살이 빠져 몸무게가 75㎏ 정도다.
올초 내곡동 3반 반장을 맡으면서 집에 귀가하는 시간이 더 늦어졌다. 순찰하듯 이웃을 들여다보기 때문이다. 홀로 살고 있는 송할아버지, 갑자기 하반신마비가 된 김씨, 소년소녀 가장이 사는 집 등 힘든 이웃이 많다. 지역 사회복지사나 적십자사와 연결하는 일도 한다. 반장을 맡고 제일 먼저 집집마다 다니며 휴대폰과 집 전화번호를 알렸다. 특히 외출이 쉽지 않은 장애인과 노인들을 돕기 위해서였다.
“24시간 대기할게요. 어려운 일, 급한 일 생겼을 때 막 불러주세요. 언제든 올게요.”
‘썬파워’ 별명처럼 언제나 기운차고 밝다. 옆에서 지켜보는 사람이 힘 날 정도다. 웬만한 장정과 팔씨름을 해도 ‘훅’ 힘주면 한방에 넘어간다. 튼튼한 팔과 다리 힘으로 쌀과 김치 등 부식거리를 나르며 ‘큰 도움은 못돼도 작은 사랑을 나누며 살자’고 한다. 신조다. 보람있어 재미있다.
축구는 4년 전 시작했다. 당시 강릉상록여자축구팀은 문화부장관기배 여자축구대회를 앞두고 골키퍼가 없어 애태웠다. 평소 알고 지내던 감독이 부탁해왔다. ‘까짓것 덩치 있으니깐 막을 순 있겠다’ 싶어 합류했다. 보름 뒤 개막한 대회에서 상록팀은 전국 준우승을 차지했다. 썬파워 별명도 이때 붙었다. 거미가 먹이를 낚아채듯 상대팀의 공격을 척척 막아냈다.
내친김에 지난해 축구심판 자격증도 땄다. 관동대, 상지대, 삼척대 남학생들 틈에 끼어 200m, 50m를 각각 30초, 8초 안에 달리느라 용을 뺐다. 마흔 줄에 접어든 아줌마가 잘도 뛰었다. 가볍게 심사에 통과했다.
#구두쇠 천사의 두가지 소원
“중·고등학교 때 운동했느냐는 말을 자주 들어요. 학교 다니기도 힘들었는데 그럴 여유가 있었나요”. 가정형편이 어려워 중학교도 1년 늦게 겨우 들어갔다. 고등학교는 낮에 공부하고 밤엔 방적공장에서 일하는 수원한일실업고에 다녔다. 가난한 살림으로 시작해 결혼 후에도 고생이 많았다. 새벽 5시부터 자정까지 하루종일 서서 기계 스웨터를 짜느라 아이를 몇 번 잃기도 했다.
근검절약은 오래전부터 몸에 배었다. 요즘도 식구 중 누가 화장실에 들어갈 때 불을 켜면 혼이 난다. 만일 화장실에 불을 켰는데 끄지 않고 나왔다 하면 ‘두번 죽음’이다. 마루 형광등도 손님이 와야 켠다. 빗물을 받아 청소하고 애벌빨래 한다. TV, 식탁, 운동기구 등 살림 대부분이 주워 온 재활용품이다. 1년에 자장면 외식은 한두번 정도. 그동안 슈퍼마켓, 연탄 배달, 뻥튀기 장사 등 갖은 고생으로 10원, 20원 모은 돈으로 2년 전 작은 4층짜리 건물을 샀다. 대학생들에게 자취방을 내주고 있다.
집을 마련하면서 부부는 약속했다. 욕심 부리지 말고 힘닿는 대로 어려운 이웃을 돕고 살자고. 2년 전이다. 신혼여행 후 결혼 17년 만에 첫 여행을 갔다. 그러나 둘만이 아니었다. 장애가 있는 작은 아버지와의 인연으로 10여년전부터 알게 된 평창 지역 장애인들과 함께 였다. 2박3일간 제주 바다 한번 감상할 겨를 없이 시중을 드느라 돌아온 후 나란히 몸살을 앓았다. ‘강원도 곰돌이 체육대회’도 해마다 빠지지 않는다. 출전한 장애인 선수들의 화장실을 쫓아다니고 경기복을 갈아입히고 식사 보조와 경기장 이동을 돕는다.
지난해 연말부터 시작한 강릉천사운동본부 일도 만만치않다. 본부에서 돕고 있는 나영이(7)를 수시로 찾아간다. 올해 초등학교에 입학한 나영이는 새 가방 살 형편이 못되었다. 웃음도 잃었다. 환경미화차 운전기사였던 아버지가 지난해 여름 갑자기 폐암 말기 판정을 받았다. 정신지체 엄마는 충격받아 상태가 더 안좋아졌다. 천사운동본부원들과 힘을 모아 나영이 돕기에 나섰다. 이젠 여러기관에서 도움을 받게 됐다. 나영이 아버지는 생명이 두달 밖에 남지 않았다고 선고받았지만 얼마전 폐가 조금 살아났다는 진단을 받았다.
나영이 엄마는 기운을 차려 밤이면 폐지를 주우러 다닌다. 그 앞에서 ‘썬파워 아줌마’가 힘차게 리어카를 끈다. 나영이 아빠도 몸이 조금만 더 좋아지면 일을 돕겠다며 용기를 내고 있다. 관심과 사랑이 나영이네 집에 다시 희망을 불어넣었다. 되찾은 나영이의 환한 미소에서 ‘썬파워 아줌마’는 다시 힘을 얻는다. 재충전된 사랑은 다시 더 큰 사랑을 나누는 힘이 될 것이다.
“소원은, 몸 튼튼히 돈 많이 벌어서 어려운 분들 ‘팍팍’ 돕는 거예요. 또 한가지는요, 그런 내 마음 변하지 않는 거고요….” 내곡동 ‘썬파워 아줌마’ 75㎏ 천사의 소원 두가지다.
〈강릉|글 김희연기자 egghee@kyunghyang.commailto:egghee@kyunghyang.com">egghee@kyunghyang.com>〉
〈사진 정지윤기자 color@kyunghyang.commailto:color@kyunghyang.com">color@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