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매잡는 이상순

[치매] 지팡이 어르신과 임신, 나는 몰랐다.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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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매] 지팡이 어르신과 임신, 나는 몰랐다.

희망나눔 강릉 이상순 2022. 10. 26. 14: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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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정에서 먹고 사는 것이 어려워, 결혼을 일찍 하시게 되었다는 어르신, 어린 나이에 한의사인 남편을 만나 개성에서,
여유롭게 사시다가 6.25 때,
한국으로 오신 어르신을 알게 되었다.

함께 오신 남편분은
시름 시름 병치레를 하시다가, 돌아올 수 없는 곳으로 떠나시고,
어르신은 남겨진 6남매를 키우기 위해,
보따리 장사를 하시며,
안 가 보신데가 없다고,
어르신은 연세가 있으셔도
누구든
"예쁘시네" 소리가 자동으로 나올법한 미모셨다.


어르신 말씀이 자식 돌보기가 바빠 무조건 앞만 보고 사셨다고,
그런데 장사를 나가면
주변 사내들이 여간 성가신 게 아니셨다고
그래서 평상시
머리카락을 짧게 상고머리를 하고, 빵떡모자 쓰고
옷도 남장을 하고 사셨는데, 그래도 남정네들이 걸음걸이 보시고 여자로 알아차리며 성가시게 했단다.
주변에서 치근덕거려도, 자식들 키워내야 한다는 일념으로, 열심히 살아가시는 어느 날,
청천벽력 같은 연락을 받으셨단다.
대관령에서 버스가 굴러 사망자가 몇 있는데, 그중에 한 명이 어르신 아들,
어르신께서는 등짐을 많이 져서, 꼬리뼈가 휘어지도록 일하며, 고생 고생 생고생하며, 힘겹게 키운 아들이었다고,
어르신은 자식을 가슴에 묻고, 아무것도 할 기운이 없었으나,


꽃은 어르신, 나비는 어르신 등짐에 비유하느라 올림





어르신만 쳐다보고 있는 자녀들의 말똥말똥한 눈동자를 보니 정신이 번쩍 드셨단다.
물물교환 하던 시절 장사라
무거운 걸 이고, 들고, 지고, 장사를 하고, 물건값을 다시 곡식으로 받아,
친분 있는 집에다 맡겼다가,
나르셨는데,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내 친정 엄마 평창 방림 집에도, 장사하던 물건을 맡기고 다니셨다고,
두 어르신들이 만나서 말씀하시는 걸 들었다.
친정엄마가 오셔서, 어르신 댁에 모시고 가니, 울 엄마가 어르신을 기억하셨다.
참 그 오래된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 기억해 낸, 울 엄마 파이팅이다.
우리 엄마 말씀이 " 어르신 참 오랜만이네요. 예전에도 고우시더니, 지금도 여전히 고우시네요"
정작 지팡이 어르신은 장사하러 워낙 많은 곳을 다니셔서, 한참 후에야 우리 엄마를 기억하셨다.




60 넘어가니 무거운걸 지고이고가 안되어, 남의 집 가정부를 시작하셨는데,
너무나 예쁘니 허구한 날 오해받고, 의심받고,
다른 집으로 전전하기를 여러 번~~~~~~
그래도 자식을 굶길 수 없으니, 속이야 새까만 연탄이 되더라도 잘 참아내셨다고, 아니 버티셨던 것이다.




그렇게 힘들게 살아오셨건만,
지금은 자녀분들이 어르신보다 먼저 저 세상으로 떠났고, 어르신은 수급자가 되어 정부의 도움받고 살고 계시는데,
연세가 있으시니 모든 질병으로 일어나시기도 힘들어하셔서
천사운동본부 사무실이 어르신 집 옆에 있을 때라 자주 방문을 하게 되었다.
그러면서 어르신 이야기를 많이 들을 수도 있었던 것이다.


얼음이 꽝꽝 얼고, 눈보라가 치던 어느 날, 혼자 계시기 적적하시다고 " 같이 자면 안 되겠냐"라고 하시길래
어르신과 한 이불을 덥고 누웠는데 , 찬바람이 사람 덕 보겠다고, 막 들이 달려 벗어둔 털 잠바를 다시 껴 입고,
이젠 자야지 마음먹고 눈을 감았는데,
쥐 서방들이 천장에서 공연을 해대니 잘 수가 없었다.
그러는 중에 이번에는 어르신이 꿍꿍 앓는 소리를 내셨다.
왜 그러시냐니까 변비로 대변이 며칠째 안 나온다고,...
그때가 새벽 3시경이었는데 약국은 당연 문을 닫았고
문 연 슈퍼가 있을까(?)
혹시 소방서에 비상약이 있을까(?)
그때는 차가 없던 때라 얼음 빙판을 조심스레 걸으며, 뛰며 변비약을 찾아봤으나 열려있는 슈퍼마다 다녀봐도 약이 없었고
소방서에도 가 봤지만 없었다. 물론 소방서는 기대도 안 하고 갔지만....
다시 어르신께 와서 "들기름이라도 드셔 봐요. 혹시 , 미끄러워 대변이 나오지 않을까요?"
"이미 두 세 숟가락 먹었어"
어르신은, 말씀을 하시는 중에 우웩 우웩~~~~ 토하기 시작하시고,
옆에 보이는 수건과 걸레로 닦아내며 아침 해맞이를 했다.
대변은 여전히 나올 생각도 안 해 택시 타고, 병원으로 모시고 가서 묵은 변을 시원하게 끌어냈다는...



그 이후 어르신은 나에게 더 애착을 느끼시며 수시로 전화를 하시고
사무실을 찾아오셨다.
나도 우리 집에서 특별한 음식 만들면 갖다 드리고, 어르신도 나를 엄청 챙기고,
무더운 여름에 귀한 귤을 하나 들고 오실 정도셨으니,
친정 엄마보다 더 친하게 지냈다면 믿을까(?) ^^

어르신 입원하시면 나는 간병 봉사를 한 달씩 또는 보름씩 어르신과 병원에서 지냈고, 병원 입원을 수시로 하셨기에 간병 자원봉사도 자주 갔었다.
퇴원하시면 어르신 댁에서 하하호호 웃어가며 잘 지냈었다.

아마도 8년 정도의 세월이었을 듯....

그 이후 세월이 흐른 어느 날,
다른 어르신과 식당에서 점심을 먹고 있는데, 이 어르신이 지팡이를 들고, 눈에 횃불을 달고 들어 오셔서는
내 앞에 어르신을 지팡이로 치시려는 제스처를 하시며
"이런 나쁜 X ,니가 그럴 수 있어? "~~~~~~
밥 드시던 어르신은 " 형님 왜 그러세요? 제가 뭘 잘 못한 게 있나요?"
지팡이 든 어르신은 무작정 때리시려는 포즈를 취하셔서
우리는 놀라 식당을 빠져나와 사무실로 피신을 했는데,
어르신은 지팡이를 휘두르시며, 우리 사무실을 오셔서는 다짜고짜 지팡이를 휘두르셨다.
지팡이 휘두른 사건이 있은 후로는 어르신이 안 보이셨고,
나도 궁금은 했지만, 알 길이 없었는데,
가끔 다른 어르신이, 지팡이 어르신께서는 치매가 왔다느니, 시설에 입소하셨다니 여러 가지 사연이 들렸다.



내가 치매예방 강사가 되어 처음 요양원 수업을 들어갔는데
아니 이 지팡이 어르신이 거기 계셨다.
나는 너무 오랜만이라 반가워서 어르신을 얼싸안고 눈물을 펑펑 흘리는데,
어르신은 나를 보시자마자 배를 만지시며,
"아주머이요, 내가 임신을 했잖수. 어트하믄 좋수?"
"어르신 애 낳으시기만 하세요. 제가 업어 키울게요 아무 걱정 마세요"라고 말씀을 드렸더니
배시시 웃으셨다.
어르신은 치매로 젊으셨을 때, 자식들 키우시느라 힘드셨던 그때로 다시 돌아가신 듯...



식당으로 사무실로 지팡이 들고 쫓아다니시며 나를 힘들게 하실 때
나는 몰랐다
어르신이 치매가 왔다는 걸
진작에 치매예방강사가 됐었더라면 어르신을 인지건강 관리를 해 드렸을 건데.....



작년엔가 어떤 분께 지팡이 어르신 소식을 들었다.
이 세상 모든 시름 다 내려놓으시고
아주 먼 길을 떠나셨다고......................................


저에게 베풀어 주신 크신 사랑 잊지 않고, 다른 분께 돌려 드리며 살겠습니다.
어르신 진심으로 뵙고 싶습니다.
어르신 사랑합니다.
천국에서 저 보이시나요?
보이시면 손 흔들어 주셔요.
어르신의 예쁜 미소가 저의 눈앞에 아른거립니다.
어르신 행복하세요.
계실 때 더 못 해 드린 것이 마음 아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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