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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가는 이야기

가마솥 추억,용의검사

희망나눔 강릉 이상순 2024. 11. 12. 0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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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나가는 길에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모습을 보니, 옛날 시골에서 소여물을 끓일 때의 기억이 떠올랐다. 어릴 적, 나무를 아궁이에 넣고 불을 때야 비로소 밥을 해 먹던 그 시절이 생각난다.

그 시절엔 집집마다 물이 없어, 강가에서 물을 길어와야 했다. 소여물을 끓일 때면 설거지 물을 가마솥에 모았다가 불을 지폈다. 물이 귀한 시절이었기에, 따뜻한 물로 발을 씻는 일조차 쉽지 않았다. 그래서 학교에서 용의 검사를 하는 날이면, 우리 남매는 소여물을 끓이던 가마솥에 걸터앉아, 구수한 냄새를 맡으며 발을 씻곤 했다.

어린 나이에 양동이에 강물을 담아 머리에 이고 얼음이 낀 빙판길을 걸어올 때면, 양동이 물이 걸음마다 앞가슴과 등으로 쏟아졌다. 물이 아까워 한 발 한 발 조심스레 움직였지만, 온몸에 힘이 들어가 결국 다리에 쥐가 날 정도였다.

집중해서 부뚜막 위에 양동이를 내려놓고 나면, 물은 절반밖에 남아 있지 않았다. 절반은 내 앞뒤 몸을 적시며 신발 속으로 흘러 들어갔고, 차가운 겨울바람에 고드름이 되어 얼어붙곤 했다.

그 시절, 친정 할아버지, 할머니, 아버지도 모두 생존해 계셨다. 내가 무거운 양동이를 이고 들어오는 모습을 보시며 미소 지으시던 가족들, 내 모습이 그들의 웃음거리이기도 했다.

최대한 가까이 다가가서 사진을 찍고 싶었다. 아니, 동영상을 찍어 그 순간을 오래 간직하고 싶었다. 하지만 설렁탕을 주문하지도 않고 카메라를 들이대기엔 괜스레 마음이 불편해, 그저 멀리서 조심스레 한 컷만 남기고 돌아섰다.

사장님 몰래 한 발짝 떨어져 도로를 찍어 보았다. 떨어진 나뭇잎들 사이로 오토바이가 한가로이 모델이 되어 주었다.

요즘은 가마솥에 음식을 끓이는 집이 거의 보이지 않는데, 오랜만에 가마솥에서 피어오르는 김을 보니 어린 시절이 떠올라 글을 써 본다.

감사합니다.

가마솥의 추억에 잠긴
강릉에서, 이상순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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