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매잡는 이상순 인지교육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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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창, 샘물 빨래터에서 배운 삶의 온기

희망나눔 강릉 이상순 2025. 11. 24. 10: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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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찬 눈보라가 몰아치던 1977년 어느 겨울.
엄마와 나는 빨래를 가득 담은 대야를 머리에 이고, 일제강점기에 만들어진  버스 다니는 다리를 건너 평창군 상방림 평창강가의 빨래터를 향해 걸었다.

강가에는 보글보글 샘물이 솟아 따뜻했기에 겨울에도 빨래를 하러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동네 어른들이 옹기종기 모여 앉아 자리를 지키고, 자리가 나기를 기다렸다가 얼른 끼어 앉아 빨래를 하던 그 풍경이 아직도 선하다.


장갑이라고는 없던 시절. 맨손으로 물속에 빨래를 담그면 샘물은 따스했지만, 그 빨래를 꺼내 비비는 순간 손은 금세 얼어붙었다. 얼음에 손이 베이기도 했고, 물 묻은 손으로 다시 대야를 머리에 이고 돌아오는 길은  더 추웠다. 나는 양손으로 대야를 잡아야 했지만, 우리 엄마는 달랐다. 능숙하게 머리 위에 대야를 얹은 채 양손을 겨드랑이에 쏙 넣고 아무렇지 않게 걸어가셨다. 그렇게 집에 도착해 얼어붙은 빨래를 빨랫줄에 널던 그 모습, 아직도 눈에 선하다.

집에 들어갈 때는 한겨울의 장난 같은 풍경도 있었다. 발과 손이 시려 마루를 껑충 뛰어올라 쇠 방문고리를 잡아 문을 열려하면, 그  차디찬 쇠고리가 내 손에 ‘착’ 달라붙어 떨어지질 않던 기억. 다리는 벌써 방 안에 들어갔는데, 손은 문고리에 붙잡혀 한참 흔들어야 했던 그 모습이 지금 생각하면 웃음이 난다.


이런 이야기를 아이들에게 들려주면, “그냥 세탁기 돌리지, 왜 개울에서 빨래를 해?”라며 도리어 엄마가 뭘 모른다며 놀리기까지 한다. ‘일을 스스로 만드는 엄마’라며 장난치던 아이들….
요즘처럼 따뜻하고 편한 세상에 사는 아이들에게 그 시절을 살라하면? 아마 단 하루도 버티지 못할 것이다.

돌이켜보면, 그 모든 고단함을 묵묵히 견뎌낸 어르신들이 참 가엾고도 위대하다.
혹독한 겨울과 힘든 삶을 이겨내고 이 자리까지 오신 모든 어르신들께,
이제는 대접받고 행복하시기를 진심으로 빌어드리고 싶다.

감사합니다.
치매 잡는 이상순 인지교육원 대표 올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