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매잡는 이상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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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매] 가방과 월담

희망나눔 강릉 이상순 2022. 10. 29. 23: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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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 내내 가방을 싸신다.
가방 안을 열어보면
쓸모 있는 것도 별로 없고
대부분
신문지,휴지, 쓰던 마스크,
우편물, 양말 서너 켤래, 다 쓴 빈 화장품, 잡동사니 가득 들은 미니 가방 서너 개, 약봉지, 색연필 빈 통,
팬티 기저귀,
등등 ㆍㆍ

가방 챙기시는 중


특히 색연필은 잘 챙기시려 신경을 쓰시는데,
정작 빈 통을 챙기신다는 것,

가방을 하나만 챙기면 되는데
서너 개를 가득 빵빵하게 채우고는 , 어깨에 하나 메고, 양손에 들고, 등에 하나 메고, 나가시려 할 때,


나는 어르신 살살 달래서
가방을 하나만 지고, 나머지는 내려놓게 한다.
금방 내려놓으시고는
또 주섬 주섬 챙기시기를
주간보호 차 타시기 전까지는 하시나 보다.


주간보호 대표님은 가방 가져오지 말라고 신신당부를 하는데,
어르신은 남의 정신으로 사시다 보니
계속 챙기신다.
일본 영상물에서 보니 5분마다 같은 말 반복하던데, 이 어르신은 5분이 아닌 바로 가방을 싸신다.
말리다 보면 기운이 쭉 빠지며 땀이 송골송골 솟아오른다.

(겉에서 보기엔 색연필 통이나 사실 빈 통임)

어느 날은
구석진 곳에 모아둔 재활용 박스에
빈 소주병도 비닐 가방에 가득 넣어, 많은걸 들고 가시느라 무거워서 , 덜거덕 거리며 거의 끌다시피 들고나가실 때는,
병이 깨져서 다치실까 봐
나는 뒤를 따라가며 가방을 같이 드는데, 어르신은 내가 못 가져가게 하느라 잡은 걸로 아시고, 나를 위아래로 훑어가며 째리시며, 막 끌고 다니시다가, 잠시 본 정신으로 돌아오시면, 빈병 든 가방을 끌고, 도로 대문을 열고 , 들어오시면서, 짜증을 힘껏 막 내신다.
"에이씨 내가 돌았네 돌았어 도대체 왜 빈병을 들고 돌아댕기는거야 이래 살아서 뭐하나?"
나는 이제 드디어 어르신께서 인지가 돌아오셨구나 하고 좋아하다 보면, 그새 또 딴 사람이 되어 가방에 이것 저것 막 쑤셔 넣으신다.

이렇게 어르신을 달래며, 가방을 놨다 들었다 놨다 들었다 를 하다보면, 아침시간
금세 훅 간다.

(예전에 색칠한 종이와 묵은 신문지 가방에서 꺼낸 것)


차 타실 시간이 다가오면 화장실 볼 일을 보시게 한다
" 어르신, 차 타시기 전에 화장실 한번 다녀오시겠어요?"

어르신은 가방을 짊어지고 화장실을 들어가시려다 발 걸래를 밟으시며,
"에이씨 이게 뭐야? 코코가 오줌 쌌네.
이놈에 개쉐이 내 양말 다 젖었잖아, 짐승 못 키우겠네
여태 키운 게 아까워 남 주지도 못 하겠고..."


씩씩대시며 양말 한 짝을 벗어 휙!!! 던지시고, 화장실을 들어가셨다 나오시며,
잠깐 TV를 보시려고
소파에 앉으셔서는
정말 심각한 표정으로
"어머야라 이상하다야
내가 분명 학교
(어르신은 주간보호 가시는 것을 학교라 하심)
를 갈라고 양말을 두 짝 모두 신은 것 같은데 ㆍㆍ
귀신이 곡할 노릇이지,
내 양말 한 짝이 어디 갔어?
왜 한 짝만 신었지?
누가 내 양말을 벗긴 거나?
언니가 내 양말 벗겼나?"

"아니요"

서랍장에서 새 양말을 꺼내 신겨드리고
모시고 나와, 주간보호 차 태워 보내드리고 나니
나에게는 조용한 자유와 평화가 찾아왔다.
바깥바람이 분명 차가운데,
나는 반팔임에도 "아유 시원하다"가 자동으로 나온다.
치매어르신과의 지내는것이 쉽지만은 않다, 그러나 보람되는 일이라 내 스스로가 대견해진다.

.
.
.
.


낮에 주간보호 수업을 마치고, 귀가하시는 어르신을 모시고 집으로 들어가려는데 ,
어르신께서 갑자기 문을 쿵!!!!!!
대문이 잠겨버렸다
열쇠는 집안에 있는데......참 머리가 복잡 해 졌다.

더욱 황당한 것은, 어르신이 가방을 집 담벼락 구멍에 강제로 밀어 넣으시고는, 담벼락을 타 넘어 보시려고 다리 한 짝이 담벼락 위를 향해 올리시는 중이었다
평상시에 어지럽다 소리를 잘하시는 분이 갑자기 핑 돌면 어쩌시려고,....
집안에는 아무도 없고, 열쇠도 집 안에 있고, 비는 부슬부슬 내리고, 문을 열 방법이 없었는데,
옆집 아드님이 마침 나와, 월담하여 문을 열어 줬다.
얼마나 고맙고 감사하던지 비도 내려서 칙칙한데...
죽으라는 법은 없다 했던가? 지금이야 글을 쓸 여유가 있지
문 잠긴 순간에는 아득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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