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매잡는 이상순

서리맞은 고들빼기와 산초두부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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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리맞은 고들빼기와 산초두부

희망나눔 강릉 이상순 2022. 11. 17. 19: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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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 일찍 눈뜨자마자
고들빼기 캘 수 있는
장비를 갖추고 산에 올랐다


어젯밤에 서리를 한 대씩 얻어맞은 고들빼기는
추워 죽겠다고
"고들빼기 죽겠소
살려주오"
처절한 몸부림을 치고 있었다.




서리가 내리니
어떤 것이 잡초인지
어떤 것이 고들빼기인지
구분하기 쉽지 않았다
50년을 고들빼기 캐 먹고살던 내가 헷갈리다니
이런 세상에 ㆍㆍ



나무 바로 아래와 바위 아래는 서리를 안 맞아
땅도 폭신하고
고들빼기도 쌩쌩하고

그 외에는
서리란 녀석이
호미도 흙을 거부하게끔
꽝꽝 얼려 놓고,
고들빼기도 옴짝 달짝 못하게 하얀 옷을 입혀 놓았다.


서리맞은 고들빼기

고들빼기가 서리 맞아 동작 그만 자세로
축 늘어진 채
덜덜덜 떨고 있었다.

땅이 얼어 인증숏 찍는 중인데 장화 신은 발이 슬슬 시려왔다.

급하게 나오느라
맨둥발(맨발-평창 사투리)로 장화를 신었더니
발이랑 장화랑 겉도는 것이
영 불편했고, 장화를 뚫고
올라오는 냉기는
더 차가워 올 들어 가장
발이 시려 혼났다.

"아 발 시려
아 발 시려"
쉼 없이 읊어졌다.

산에서 캐는 고들빼기는
농약성분도 질산성분도
전혀 없는,
완전 산삼 같은 효능이 있으리라 예상한다.
내가 만든 고들빼기김치 드실 분은 줄을 서시오
차례가 갈렸는지 모르겠소.

세척하려고 대형 대야에 고들빼기를 담고보니 대부분 작았다.

산에서 영양분 없이 자라서 인지, 대체로 조그마한 크기였다.
재배한 것은
반씩 자르던가
사결 치기를 해야 하는데
야생 고들빼기는
한입에 쏙 들어가는 크기라
완전 딱 좋았다.

산속에서 캔 것이라
티겁지는 정말 많았다.

캐는 시간보다
정리하고, 세척하는 시간이 몇 배로 더 들었다.

다 씻어서
바구니에 물 삐게 해 놓고,

동서가 짠 산초 기름


오후 시간에 아들이 만들어 준 김치찜으로 저녁을 먹으려고
상을 다 차렸는데,

동서가 전화를 했다.
"아주버님 산초기름 짜 왔어요
산초기름으로 두부 구워 드시러 오세요"
오호!!
언제 먹어봤던가?
와우!!! 그 귀한 산초 두부?

그렇지
산에 잘 다니시던
친정 할머니께서 살아 계실 적에,
바닥이 흙 정지라 소갈비(소나무에서 떨어진 잎사귀)를 사람 앉을 방석으로 두툼하게 둥그렇게 깔고
정지(부엌-평창 사투리)에서
참나무로 군불을 때고
나오는 참나무 숯불로 화로에 담고 그 위에
소두 뱅이(솥뚜껑) 올려놓고
온 식구들이 옹기종기 둘러앉아
방울방울 끓어오르는 산초기름을 보며
그 향에 취한 채,
따끈한 산초 두부를
한 입씩 베어 물며
행복한 시간을 보냈었는데 ㆍㆍㆍ
그 자리를 지키고 계셨던
친정 할아버지
친정 할머니
친정아버지께서는
벌써 고인이 되신 지 오래되셨다.
살면서 중간중간
그분들이 그립고
눈물 나도록 뵙고프다.
잠시 다녀가는 이 세상
일만 실컷 하시고 떠나신
친정 할머니, 친정아버지
천국에서 편히 쉬셔요.




우리 부부는 차렸던
밥상을 다시 물리고,
어둑어둑한 길을
핸드폰 플래시로 불 밝히며,
사이좋게 앞 집 동서 네로 발걸음을 향했다.
가까이 갈수록
산초기름 냄새가 우리에 후각을 행복하게 만들어 주고 있었다.
앗!!! 그런데, 창문 너머 보이는 동서의
모습이 이상하다
부엌에서
마스크를 쓰고, 자욱한 연기 속에서 선풍기를 돌리고
분주한 움직임이 보였다.

거실문을 열고
부엌으로 입장해 보니
전기프라이팬에 산초 두부가 구워지면서 나오는 연기가 이상하리만치
과하게 연기가 배출되고 있었다.

온도를 저온으로 낮추고 나니
연기가 어디론가 사라졌다.
산초 두부의 인기는 무엇으로 비교가 될까?
노릇하게 구워질라치면 누군가 벌써 젓가락으로 치켜들고 있었으니 ㆍㆍ

동서의 수고로 달짝지근한 옥수수 동동주와
산초 두부를 안주삼아
두 형제 가족들의 이야기는
시간 가는 줄도 모르고
계속 이어갔다.

나의 하나뿐인 동서는
예쁘고 부지런하고,
마음씨 곱고,
음식 솜씨까지 으뜸이다.

전라도 장성에서,
이 먼 영월로 시집와
잘 살아주니
언제 봐도 기쁘다.
동서야 사랑한다.
늘 고맙게 생각한다^^♡
건강하게 오래 살길
그래야
그동안 수고한 것
조금이라도 받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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